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카호시 노리히로 (문단 편집) == 플레이 스타일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아카호시 노리히로 도루 (2).jpg|width=100%]]}}} || > 誰が1番を打っても、存在感としては赤星の3分の1にも満たないんじゃないか。 > 누가 1번 타자로 나서도, 존재감으로는 아카호시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. >---- >ㅡ 오바나 타카오, 전 [[요미우리 자이언츠]] 1군 투수 종합코치 및 전 [[요코하마 베이스타즈]] 감독[* [[DeNA]]가 인수하기 전 TBS가 운영하던 베이스타즈 시절의 마지막 감독이었다.] > 赤星を塁に出すのはソロホームランと同じだから、警戒しすぎるぐらいでちょうどいい。 > 아카호시를 루에 내보내는 것은 솔로 홈런과 같으니까, 경계하는 수준으로 알맞다. >---- >ㅡ [[노무라 카츠야]], 당시 [[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]] 감독. 아카호시에게 한번에 '''12개'''의 견제구를 던지게 하며. 전형적인 올드스쿨 리드오프. 170cm의 단신으로 호리호리하다 못해 깡말라보이는 외모를 지녔으며 이미지대로 발 하나는 미친 듯이 빨랐다. 좌타자로 타격 이후 1루까지 3.74초, 번트 시도땐 3.50초까지 기록할 수 있는 스피드 스타로 루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도루 문제 때문에 상대 투수들에게 부담이 되는 선수였다. 요미우리의 [[우에하라 코지]]는 본인의 유튜브에서 가장 상대하기 싫었던 주자로 꼽았던 적이 있을 만큼 루상에서 위압감을 보여준 선수였다. 타격에서는 3할 타율을 5차례나 기록했을 정도로 컨택 능력이 괜찮았지만, [[이대형/플레이 스타일|갖다 맞춘 뒤 발로 뛰어나가는]] 전형적인 슬랩히터라 은퇴할 때까지 9년동안 5,000번 정도의 타석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이 고작 "3개"에 단 한 시즌도 장타율 4할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. 체감이 안 간다면, 그 [[이대형]]조차 통산 9홈런을 기록했고 선수 시절 [[이대형/선수 경력/2014년|딱 한 해나마]] 장타율 4할을 기록한 적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된다.[* 이대형의 이 9홈런 중 하나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이다. 즉 발로 홈런 하나쯤 만들 만도 한데, 그러지도 못했다는 것. 그리고 이대형이 유일하게 장타율 4할을 찍은 2014 시즌의 경우 KBO 자체가 어마무시한 [[타고투저]] 성향이었단 점은 감안해야겠으나, 아카호시가 현역이던 시절 일본프로야구도 일명 래빗볼로 대표되는 반발력 높은 공인구가 쓰이던 시절이라 타고 기질이 없지는 않았다. 여기에다가 아카호시의 한신이 홈으로 쓰는 [[한신 고시엔 구장]]이 홈런은 잘 안 나오지만 외야가 좁아서 외야수비가 어렵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.] 2,528타석 연속 무홈런이라는 일본 기록도 갖고 있다.[* 여담으로 KBO에서는 [[강한울(야구선수)|강한울]]이 데뷔 이후 1545타석 이후에 첫 홈런을 쳤으며, 연속 타석 무홈런 최고 기록은 [[이용규]]의 1640타석 연속 무홈런이다.] 대신에 발로 만든 3루타는 제법 많으며, 볼넷도 적지 않게 얻어냈기에 [[출루율]]도 높아서[* 통산 출루율이 .365로 타율보다 7푼이 높고 출루율 커리어 하이는 2008년의 .398. 이 해엔 심지어 홈런을 하나도 치지 못했음에도 .317/.398/.347 OPS .745의 슬래시라인을 기록하며 무홈런 타자임에도 2자릿수 홈런 타자 수준의 OPS를 찍었다.] 리드오프를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. 수비에서는 노쇠화한 [[카네모토 토모아키]], [[히야마 신지로]], 이후의 [[사쿠라이 코다이]] 등 전반적으로 수비범위가 넓지 않은 선수들이 주로 포진한 한신 외야에서 [[중견수]]로 뛰면서 빠른 발을 살려 먼 거리를 빠르게 달려 공을 잡는 러닝 캐치 등의 호수비를 많이 선보였다. 아카호시의 수비 범위가 워낙 넓다보니 [[노무라 카츠야]] 감독은 아카호시의 어깨가 약하지만 타구를 향해 뛰어가기만 해도 주자는 (아카호시가 공을 못잡을지 보장할 수 없어) 정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. 다만 다이빙 캐치나 슬라이딩 캐치 같은 허슬 플레이를 많이 보여준 부작용으로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선수생명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척추 손상을 입으며 전성기에 반강제로 은퇴를 하게 된 비운의 선수. 아카호시의 선배격이자 통산 [[도루]] 역대 1위를 기록한 [[후쿠모토 유타카]][* 사실 1,000회가 넘는 통산 [[도루]]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렇지, 후쿠모토는 현역 시절 통산 2500안타, 200홈런을 달성하고 [[골든글러브(일본프로야구)|골든글러브]] 최다 수상을 기록하는 등 공수주 양면에서 아카호시보다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명선수였다.]가 해설자로 아카호시의 플레이를 보며 자주 지적했던 부분이었는데, 결과적으로 그의 우려가 그대로 실현된 것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